
“한 번의 그음이 모든 시작이 된다.” 거대한 우주의 저 밖까지도 그 안에 수용하는 것, 다시 말하면 수만 번의 붓질과 묵 장난이 이 한 번 그음에서 시작하여 그 깊이를 따라 자연의 숨을 옮기고 나의 마음을 비우는 작업이다.
먹의 농도와 여백, 붓의 속도까지 모두 드러나는 한 번 그음, 또 한 번 그음으로_시간의 흐름과 마음의 흔적이 겹쳐 하나의 풍경(작품)이 된다.
인사아트센터(인사동길 41-1) 3층에서 이창훈 화가의 개인전이 지난 17일 시작돼 오는 22일까지 계속된다.
한국화가 소실되어 가는 시대, 46년째 붓을 잡아온 수묵화가 이창훈은 먹과 여백의 힘을 다시 이야기하며 담담한 어조로 풀어놓는다.
남의 것을 베껴서 유명해지려는 한국미술의 고전적인 습성을 비판하며 그는 자신의 커리어를 강조했다.
"자기가 안베꼈다해도 남이 보기에 베끼면 베낀겁니다. 미술에는 약간의 모방과 독창성이 동시에 필요해요 "
추상과 설치, 상업적 유행이 빠르게 교차하는 미술 현장에서 그는 ‘선’과 ‘여백’이라는 한국화의 본질을 붙들고 자연과 내공의 축적을 강조한다.
이 화가는 “먹은 자연이고 붓은 곧 나 자신”이라며, 수묵은 기술보다 축적된 시간과 내면의 힘이 작품을 좌우한다고 말한다.
단번에 고칠 수 없는 먹의 특성상, 한 획을 긋기까지의 긴 수련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창훈은 한국화가 어려움을 넘지 못하고 추상으로 이동하는 현실을 지적하면서도, 그 고비를 넘긴 이들에게는 깊이가 남는다고 덧붙였다.
작품 세계에 대해 그는 평원법·심원법·고원법 등 전통 구도를 유기적으로 결합해 입체적 깊이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겉으로는 구상이지만, 내부에는 관람자의 해석을 허용하는 추상이 공존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관객은 산세와 물길, 파도와 새의 움직임까지 각자의 경험을 투영하며 작품 안에서 이야기를 확장할 수 있다.
먹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색을 쓰지 않아도 수만 가지 빛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가장 어두운 검정이 가장 섬세한 차이를 드러낸다는 역설이 수묵의 매력이라는 것이다.

이창훈은 하루라도 붓을 놓으면 감각이 달라진다며, 꾸준함과 반복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모방과 독창성에 대한 견해도 분명했다.
학습 단계의 모방은 필요하지만, 일정 지점을 넘어서면 각자의 색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래에 각자의 목소리가 있듯 그림에도 고유한 체가 있다”며, 유행을 쫓아가다 보면 자신을 잃기 쉽다고 경계했다.
이창훈은 현장 작업의 가치도 강조했다.
이창훈 화가는 남도 지역을 중심으로 사생을 지속해 왔으며, 반복된 현장 경험이 기억의 핵심만을 남겨 화면을 단순화한다고 설명했다.

불필요한 요소를 덜어내고 포인트만 남기는 간결함이 오히려 깊이를 만든다는 것이다.
한국화의 세계화에 대해서는 ‘자기 것의 확장’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타국의 방식을 변주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적 감각과 전통을 현재의 언어로 밀어 올리는 일이 곧 세계화라는 인식이다.
이창훈 화가는 기업 협업과 라이선싱 등 새로운 유통 방식에도 열린 태도를 보이며, 예술가에 대한 존중을 전제로 한 협력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세대 간 소통에 관해서는 재료의 차이보다 방법론의 공통점을 강조했다.
이 화가는 유화와 달리 한국화는 선으로 나타낸다는 것에 차이가 있다고 전했다.

이창훈은 경험을 나누는 설명과 포용이 젊은 관객과의 간극을 좁힌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연을 ‘가장 위대한 스승’으로 규정했다. 인간의 의지를 넘어서는 질서와 시간을 품은 자연 앞에서, 화가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는 고백이다. “보여줄 것은 보여주되, 여백은 남긴다”는 그의 말은 한국화가 지켜온 미학의 현재형으로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