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4일부터 7일까지 나흘간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된 서울국제관광전(SITF)은 전 세계 관광청과 문화기관이 모여 글로벌 여행 트렌드를 공유하는 축제의 장이었다.
이번 행사에서는 다채로운 관광 콘텐츠뿐만 아니라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마주할 수 있는 특별한 부스도 마련되어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글로벌 아트 전문 매체 쇼벨(shovel)의 최수영 기자가 현장에서 독창적인 시각으로 주목받고 있는 팝아티스트 슬링키(본명 이승훈, b 1986) 화가를 만나, 이승훈 화가의 작품 세계와 예술적 포부, 그리고 급변하는 현대 미술계에 대한 신랄하고도 깊이 있는 대화를 진행해 보았다.
슬링키 작가는 자신을 역사와 문화 속에 존재하는 상상적 산물들을 소환해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포스트 팝아티스트'라고 소개한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두 점의 회화 작품은 대중에게 친숙한 그림책 '월리를 찾아라'의 세계관을 완전히 전복시킨 결과물이다.
원작이 수많은 군중 속에 숨어있는 월리를 찾아내는 숨바꼭질의 묘미를 주었다면, 슬링키는 그 거대한 군중의 바다에서 월리라는 핵심 아이콘을 과감히 밖으로 끄집어내어 단독 단상 위에 세웠다.
작가는 군중 속에서 고립되거나 방향을 잃고 방황하던 자기 자신을 이 캐릭터에 치환하여 투영했다고 고백한다.
단순히 대중문화의 요소를 차용하는 팝아트의 문법을 넘어, 형태를 깨뜨리고 주관적인 철학과 실존적 서사를 입혀 완전히 새로운 맥락으로 환원한 것이다.
어릴 적 공기처럼 흔하고 사소했던 존재가 무대 위의 주인공으로 격상되는 순간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현대 사회 속 개인의 존재론적 가치를 다시금 응시하게 만든다.
이러한 작가의 시선은 그가 오랫동안 몸담고 향유해 온 스트리트 문화, 만화, 게임 등 '서브컬처(Subculture)'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슬링키 화가는 과거 학창 시절에는 어린 친구들도 용돈을 모아 티셔츠 한 장을 쉽게 사며 가볍게 즐길 수 있었던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최근 거대 자본 및 대기업의 브랜딩과 결합하면서 역설적으로 '명품'처럼 소비되고 있는 유통 시장의 현실을 꼬집었다.
주류 메이저 브랜드들이 자신들의 영역에서 더 이상 신선한 유니크함을 찾지 못하자 서브컬처의 소스를 무분별하게 빼앗아 가 소비하는 현상에 대해, 작가는 어린 세대가 더 이상 이 문화를 순수하게 즐기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한 깊은 아쉬움을 표했다.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 계급화되고 획일화되는 미술 시장과 대중문화의 모순을 화면 위에 역설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그의 작업이 지닌 또 다른 감각이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예술이 지닌 근원적인 가치와 사회적 역할로 이어졌다. 슬링키 작가는 매스미디어 및 디지털 환경과 가장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팝아트를 구사하면서도, 예술에서 결코 상업성을 배제할 수 없음을 당당히 인정한다.
그러나 이승훈 화가는 상업성을 도외시하거나 반대로 자본에 매몰되는 이분법적 태도를 지양하며, 철저히 상업적인 작가이면서도 그 안에 자신만의 확고한 가치와 철학을 녹여내는 유연한 브랜딩과 기획력을 강조했다.
이승훈 화가가 정의하는 미술의 궁극적인 본질은 바로 '위로와 공감'이다.

의식주처럼 물리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는 아닐지라도, 건조하고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나를 대신해 누군가 감정을 표현해 주고 멘탈을 관리해 주는 미술이야말로 삶을 진정으로 살아 숨 쉬게 만드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는 설명이다.
그는 작품이 단순히 갤러리에 걸려 판매되는 것을 넘어, 대중의 시선에 노출되고 머릿속에 이미지와 잔상으로 기억되는 과정 자체가 이미 공공재로서 올바르게 소비되는 카타르시스의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미술계의 화두인 인공지능(AI)의 도입에 대해서도 작가는 회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으로 받아들이는 대범함을 보였다.
AI가 기존의 데이터를 학습해 원작자보다 뛰어난 아웃풋을 내놓을지라도, 작가가 직접 손으로 캔버스 위에 물성을 구현해내는 '오리지널리티'와 독창적인 화풍은 결코 대체될 수 없다는 확신을 드러냈다.
오히려 미술을 전공하고 시각적 레이아웃을 깊이 이해하는 작가들이 AI 기술을 도구로 활용했을 때 훨씬 더 독보적인 유니크함을 탄생시킬 수 있다며, 기술적 경쟁 구도보다는 오리지널리티의 힘을 믿고 묵묵히 자기 작업을 지켜나가는 예술가적 자질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인터뷰 말미에 슬링키 작가는 두 가지의 명확한 예술적 이정표를 제시했다. 첫 번째는 그가 오랜 시간 연구하고 재해석해 온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 작업을 완성하여, 영국의 유명한 코톨드 갤러리(Courtauld Gallery)에 소장된 고흐의 진품 옆에 자신의 20호 사이즈 캔버스 작품을 나란히 걸어보는 것이다.
귀를 자르기 전 고흐의 심상과 붕대를 감은 그의 내면적 고통을 포스트 팝아트의 문법으로 해체한 이 작업은 그의 가장 뜨거운 예술적 포부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더 다양한 재료와 조각적 물성을 실험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여 뉴욕 등 글로벌 무대로 진출하는 것이다.
슬링키 이승훈은 세계 미술 시장의 거대한 축인 뉴욕에서 우뚝 서는 날을 꿈꾸며, 오는 8월 코엑스에서 열리는 어반브레이크(Urban Break) 초청 전시와 연말 개인전, 그리고 수원 화랑제 등 쉴 틈 없는 행보를 이어갈 예정이다.
아울러 그는 한국 미술계의 심장부인 삼청동, 인사동, 안국동 일대의 오랜 역사적 흐름과 로컬 갤러리들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무조건 새것만을 쫓는 일부 시선을 경계했다.
대형 아트페어에만 목을 매기보다 정부와 문체부 차원에서 지역 중심의 소형 갤러리들이 상생할 수 있는 문턱 낮은 로컬 페어를 기획하고, 예술가 증명 프로세스를 현실화하여 자라나는 청년 작가들에게 실질적인 교두보를 마련해 주기를 바란다는 정책적 제언도 잊지 않았다.
단순히 이슈와 트렌드만을 쫓는 매스미디어가 아닌, 작가들의 심층적인 내면을 조명하는 깊이 있는 공론장이 활성화되기를 바란다는 슬링키 작가의 당부는, 예술과 기업의 상생 코너를 기획하려는 미디어 쇼벨의 나아갈 길과도 깊은 공명(共鳴)을 이루었다.
멈추지 않고 자신만의 장르를 구축하기 위해 끝없이 실험하고 연구하겠다는 그의 다짐처럼, 군중 속에서 찬란하게 걸어 나온 슬링키의 예술적 목표가 현실이 되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