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5일부터 오는 28일까지 인사동 마루아트센터 (인사동길 35-6) 본관2층 오미갤러리에서 정석원 초대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사건이 터지고 나면 예술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요. 하지만 분노는 남죠. 그 무력감 속에서 붓을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화가 정우천은 최근 작업 'Hypocrite Trump'을 이렇게 설명한다.
‘위선자 트럼프’라는 제목이 상징하듯, 작품은 정치적 허위와 이익 중심의 국제 질서를 비판하는 일종의 회화적 선언이다.
장 화가는 “지난 9월 미국 ICE 이민세관단속국이 주도한 현대차, 미국 조지아주 LG배터리 공장 불법이민자들을 단속한다는 명목아래 벌어진 한국인 근로자 300명 체포사건을 그렸다"며 "자본의 이름으로 인간을 쇠사슬에 묶는 세상에 대한 분노를 담았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장 화가의 화폭이 언제나 분노로만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가 오래 전부터 반복해 온 단어 ‘바보’(Fool)는 그 반대편에 있다.
“가장 바보스러운 얼굴, 그것은 곧 우리들의 자화상이에요. 누구나 그릴 수 있고, 누구나 그 안에서 자신을 볼 수 있죠.” 작가에게 ‘바보’는 무의식의 표정이며, 세속의 계산을 잠시 벗어난 인간 본연의 모습이다.

그는 이어 “현대인은 너무 많은 이해관계 속에 얽혀 살고 있다”며 “겉모습에 갇혀 본래의 자기를 잊어버린다”고 덧붙였다.
장석원에게 예술은 그 잃어버린 ‘내면의 얼굴’을 되찾는 명상의 과정이다.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바라보세요. 무언가를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바라보다 보면 어느 순간 자기 자신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의 회화에는 여섯 개의 눈, 겹겹의 얼굴, 빛나는 이마 같은 상징들이 자주 등장한다. 불교의 ‘진리의 눈’, ‘마음의 눈’에서 착안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여러 개의 눈을 가지고 있어요. 육안뿐 아니라, 세상을 관통해 보는 마음의 눈이 있죠. 그 눈이 맑아질 때 비로소 빛이 납니다.”
장석원은 기술 중심의 시대에 대해선 신중하다. “AI나 테크놀로지를 예술에 접목하는 작가들도 많지만, 나는 오히려 반대로 가고 싶어요. 가장 원초적인 감정, 인간적인 흔적을 붙잡고 싶습니다.”
장 화가 붓의 흔적은 거칠지만 따뜻하다.
“어린아이의 눈처럼 투명한 감정을 그리고 싶어요. 계산 없는 순수함, 그 안에 예술의 시작이 있다고 믿습니다.”
미술 시장의 상업화에 대한 그의 입장은 간결하고 명료하다

“지금은 시장의 힘이 너무 커졌어요. 하지만 진짜 작가는 거기에 끌려가지 않아요. 트렌드에 휘둘리면 절대 좋은 작품은 나올 수 없습니다.”
그는 후배 작가들에게도 “유행보다 자신의 시선을 지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예술은 결국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그 자리를 잃지 않으면,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괜찮아요.”
한편 이번 장석원 전시에서는 작가 특유의 원색적 에너지와 자유로운 드로잉, 그리고 삶을 유쾌하게 해부하는 ‘나는 노란색을 좋아한다’ 퍼포먼스가 함께 지난 16일 펼쳐졌다.
오프닝에는 성능경 선생이 찬조 퍼포먼스로 함께하며, 장석원 교수의 익살과 통찰이 살아있는 무대로 주목 받았다.


한국 실험미술 1세대인 성능형 화가와의 교류를 통해 자신만의 회화 세계를 구축해온 장석원 화가는, 인간 내면의 무의식과 사회적 모순을 동시에 탐구하는 화가다.
최근에는 ‘바보’ 연작과 ‘위선(Hypocrite)’ 시리즈를 통해 현대인의 내면적 고립과 도덕적 회복을 주제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