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르포] “삼 년의 바느질, 나를 비우고 다시 채운 시간”…작가 최익규의 고백
최익규 화가의 전시회가 인사아트센터 (인사동길 41-1) 공기 속에 오래된 실 냄새와 천의 결이 가장 먼저 다가왔다. 벽면을 따라 길게 설치된 작품 하나가 시선을 잡아끈다.
미디어 쇼벨이 최익규 화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바느질로만 이루어진, 3년에 걸쳐 완성된 거대한 평면. 화가 최익규는 이 앞에 서면 잠시 말을 고른다. 마치 자신의 속내가 그대로 드러난 일기장을 보는 듯한 표정이다.
“이게요… 그림그릴 때마다 때마다 모양이 바뀝니다.”
웃으며 끝을 흐리는 작가의 말은 농담 같지만, 사실 그의 예술 세계 전체를 압축하는 문장처럼 들렸다.
회화와 설치의 경계를 오가는 그의 작품은 늘 유동적이고, 고정되지 않으며, 상황과 계절, 감정에 따라 달라진다.
요즘 미술 시장의 난조를 묻자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저는 원래 작품을 잘 팔아본 사람이 아니라서요. 경기라는 게 저한테 크게 체감되진 않아요.”
팔리는 작가, 유명한 작가, 시장에서 떠받드는 작가—그런 분류가 지금의 그를 설명하진 않는다. 그는 그저 “나한테 남은 유일한 일”처럼 작업을 이어왔고, 그것이 그에게는 삶의 돌파구이자 질문의 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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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걸 하고 있지?”
올해 예순네 살이 된 그는 “지금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는가”를 자주 생각한다고 한다. 40년 가까이 작업을 이어왔지만, 세속적인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전시를 한다는 것 자체가 욕심이죠. 정말 순수함을 지키려면 전시도 하지 말아야 해요. 근데 또… 누군가가 이걸 사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거든요. 부정할 순 없죠.”
그의 말은 끝없이 자기 자신과 논쟁해온 사람의 문장처럼 느껴진다.
“가끔은 내가 개똥철학자가 된 것 같아요. 그래도 그게 저한테는 필요했어요.”
작업이 단순한 생계 수단이나 취미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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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의 시간, ‘미안한 성실성’
그가 ‘자화상 같다’고 표현한 한 작품은 의외로 화려한 색채도, 기교도 없다. 단순한 바느질 선이 끝없이 이어지는 길고 긴 천. 그는 이 작품을 두고 “아무것도 아닌 걸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예술이라는 허울을 다 벗어버리고 싶었어요. 뭔가 있는 척, 아는 척하는 게 너무 부끄러웠거든요.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걸 해보자… 그게 바느질이었어요.”
단순 반복이지만 고된 작업이었다. 길이 수십 미터의 천을 매일 조금씩 꿰매며 3년을 보냈다. 못하는 날도 있었고, 손이 아플 때는 며칠 쉬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그 시간을 ‘성실성’이라 부른다. 작품 제목도 **〈미안한 성실성〉**이다.
“3년 동안의 제가 그 안에 다 들어있어요. 지루함도, 희망도, 한숨도. 예술을 내려놓으려 했는데… 결국 가장 예술가다운 작품이 됐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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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색화 아니냐?”라는 질문
그의 작업은 때때로 단색화로 오해받기도 한다. 간결한 선, 반복된 패턴, 제한된 색 채택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비교가 썩 달갑지 않은 눈치였다.
“처음에 단색화 아니냐고 하길래… 기분이 좋지는 않았어요. 저는 그걸 따라한 적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그는 그 오해 역시 담담히 받아들인다. 보는 이는 자유롭게 느낄 수 있고, 해석은 관객의 영역이라는 태도다.
“엇비슷해 보인다면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저는 제가 가는 길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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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시장, 그 사이의 거리
최근 미술계에서는 브랜드 협업, 인플루언서 마케팅, 글로벌 갤러리의 스타 작가 만들기 같은 흐름이 뚜렷하다.

그러나 그는 그런 방식들과는 다른 시대의 감각을 갖고 있다.
“요즘은 자기 PR, 마케팅 능력이 예술가의 중요한 스펙이더라고요. 근데… 그런 걸 하다가는 머리 깨질 겁니다. 저는 그쪽 머리가 안 돌아가요.”
그의 말은 자조적이지만, 동시에 그만의 세계를 지키겠다는 소신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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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온 방식의 자화상”
최익규의 작품은 화려하지 않다. 스스로도 “잘 나가는 예술가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동창회에 가면 작품 얼마나 팔았냐는 질문이 날아오고, 그는 그 말 한마디에 자격지심이 고개를 드는 경험을 솔직히 털어놓는다.
그러나 그가 3년을 들여 완성한 바느질 작업 앞에 서면, 누군가의 시선이나 평가보다 훨씬 오래 남는 것이 있다.

그 작품에는 그가 지켜온 성실성, 버리려다 다시 붙잡은 예술, 그리고 스스로에게 던져온 수많은 질문들이 서려 있다.
“결국은… 이게 가장 저다운 자화상일지도 모르죠.”
작업실 한구석에서 비스듬히 걸려 있는 그 긴 천의 바느질처럼, 그의 삶도, 예술도, 조용히 이어지고 있었다.
세상의 속도와 시장의 등락과는 다른, 자기만의 리듬으로.
